보통 중독이라고 부르려면 최소한 2가지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금단증상과 내성입니다. 이는 중독으로 진단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기준인 금단증상은 중독된 물질을 섭취하거나 중독된 행동을 일정 기간 하지 못하면 여러 가지 부정적인 승장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도박중독의 경우 초조하고 불안하며 매사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기도 합니다.
다만 신체적인 증상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물질중독과 달리 도박중독에서는 증상이 일관되지 않아서 도박을 그만두자마자 심한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도박 중독자도 있고, 반면 별 다른 증상을 경험하지 않는 도박 중독자도 있습니다. 또는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갑자기 강렬한 금단증상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박중독의 금단증상은 물질중독처럼 육체적인 고통은 심하지 않지만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어서 더괴롭다고 호소하는 도박중독자도 있습니다.
두 번째 기준인 내성은 동일한 흥분과 스릴,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물질이나 행동을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알코올 중독자가 알코올에 중독되기 전에는 소부 1병이면 충분히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었지만, 중독이 된 이후에는 소주 1병으로는 어림도 없어서 동일찬 취기를 느끼려면 소주 3병 이상을 마셔야 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양의 술을 자주 마시고 도수가 높은 독주를 찾게 됩니다.
도박의 경우에는 점점 더 위험도가 높은 도박에 베팅하거나 더 많은 액수의 돈을 베팅하는 것으로 내성이 생깁니다. 일단 내성이 생기고 나면 호주머니 사정에 따라 베팅 액수를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경제적인 고갈이 가속화됩니다.
도박중독이 진행되는 과정
모든 도박중독자가 동일한 과정을 거쳐 동일한 속도로 중독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습니다. 첫 번째는 사교성 도박, 혹은 유희성 도박이라고 부르는 단계입니다. 사교성 도박 단계에서는 순수한 즐거움이나 여흥, 친목 도모가 도박의 주된 목적이며 돈을 걸고 도박을 해도 대개 제한된 시간 동안 손실액을 정해놓기 마련입니다. 친구들과 게임비를 걸고 하는 내기 당구나 명절에 가족들끼리 모여 간단한 내기를 하는 윳놀이 등이 사교성 도박에 포함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교성 도박 단계에만 머무르며 어쩌다 한 번씩 재미로 도박을 합니다. 사교성 도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크게 염려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문제성 도박' 단계입니다. 이름처럼 도박이 문제가 되는 수준으로 일상생활, 가족 관계, 직장생활 등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중간에 멈추려고 하지만 멈출 수가 없는 자제력 상실을 경험합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문제성 도박 단계에 도달하기만 해도 치료받을 것을 권고하고 예방 교육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문제성 도박 단계의 도박중독자가 자신의 도박 문제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매우 드문 편입니다.
문제성 도박 단계는 도박으로 인해 삶의 균형이 깨지는 것이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도박 때문에 균형 잡힌 생활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전문기관을 방문해서 자신의 도박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양상인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성 도박 단계에서는 앞에서 함께 살펴본 중독의 공통점인 금단증상과 내성은 나타나지 않으므로, 빨리 조치할수록 더 빠르고 손쉽게 도박중독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성 도박 단계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추격 베팅'입니다. 추격 베팅은 본전 생각 때문에 잃은 돈이 아까워서 처음에 예상했던 금액 이상으로 베팅하는 것을 말합니다. 카지노에서 3만 원만 베팅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너무 빨리 잃어서 허전하기도 하고 잃은 돈이 아깝기도 해서 계획이 없던 베팅을 하는 것이 추격 베팅의 한 예입니다.
추격매수와 내성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일단 추격매수를 하게 되면 내서잉 생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당연히 베팅 액수가 급증해서 손실액도 덩달아 커집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는 '도박중독' 또는 병적 도박이라 부르는 단계입니다. 말 그대로 도박이 병의 수준에 이른 상태로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도박 충동을 주신의 힘으로만 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고, 적극적인 치유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점점 더 증세가 심해져서 만성적 상태에 이릅니다. 내성으로 인해 도박 빈도와 베팅 액수가 급장하게 되어 손실액이 급격히 늘어나고, 도박을 자제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금단 증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도박을 그만해야겠다고 마음 먹어도 사소한 유혹에 금방 넘어가며 '이번에는 따겠지' 하는 근거 없는 기대감으로 또 다시 도박에 손을 댑니다. 결국에는 모든 돈을 다 잃고 후회하는 악순환에 빠져 절망적인 상태가 됩니다. 문제성 도박 단계에서 치유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회복 속도가 훨씬 더 빠르지만 도박중독 단계에 있다고 해도 결코 늦은 것은 아닙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듯이,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치유를 받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